old/글상자 | Posted by walkingcat 2017. 3. 10. 13:43

무제

기어코 나에게 시간이 생겼다.
왠지모르게 쉬고 싶지 않았다.
누가 재촉한 것도 아니지만 쉬느라 조금씩 쌓여온 일들을
이제는 모두 할 수 있을 것 같다.


향기로운 차를 충분히 우려 머금고,
언젠간 꼭 읽어보아야지 했던 책을 읽고,
설겆이를 미루지 않아도 되었다.


소매가 조금 길어진 멋진 옷을 입고,
주머니속에서 늘 성가셨던 자동차 열쇠를 꺼내어두고,
기분좋은 구두굽 소리가 나를 문밖으로 재촉했다.


커다란 바람이 가득 메운 들판을 걸을 수록 마음이 가벼워졌다.
나를 기다리는 일이 없어, 어디쯤에서 돌아가야 할지 걱정하지 않았다.


어느 언덕아래 호숫가에 닿아
어린아이 처럼 쪼그리고 앉아 손을 담궜을때
보았다
내 손등위에 패인 주름들이 너무 깊어졌다는 사실을
그리고 곧바로 생각이 이어졌다
여기서 어떻게 돌아가야 할지